여자친구랑 도라지에서 커피와 멘토스를 사오는 길이었다.

여친이 멘토스로 내 손을 툭툭 때리면서 말했다.
"손대!! 매맞아야지"
난 이렇게 말했다.
"옛날엔 손등에 매를 맞았지. 자를 세워서. 그래서 매일 손등에 시커먼 멍줄이 몇개가 나 있었다니까."

이런 얘기를 하다가 옮겨간 주제는 학교의 체벌.
밑은 나와 여친의 대화를 한줄씩 번갈아가며 옮긴것이다.

   "좀 때리고 그래야되는것 같아. 요즘애들은 너무 싸가지가 없어."
   "근데 대신에 구김살은 없잖아. 맞고 큰 세대를 봐봐. 너무 어둡잖아."
   "그래도, 구김살을 얻는 대신에 포기하는 대가가 너무 커."      -----------    A문장
   "엉? 오빠 문장구조가 이상한데?"     ---------    B문장
   "뭐가 이상해? 맞잖아."
   "아냐. 틀렸어."
   "뭐가? 맞잖아!!"
   "아니야!! 틀렸다니까!!"

이렇게 무심코 던진 말에 한바탕 활극이 이어진다.
역시 세치혀는 그 값어치가 무모하다.

그래서 그 활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여친이 지적한 나의 문장구조상의 잘못 >

알고보니 여친이 지적한 나의 문장구조 상의 잘못은 다음과 같았다. 그것은 바로,
A문장의 '구김살을 얻는 대신에' 가 아니라 '구김살 없음을 얻는 대신에' 라고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따졌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김살없음" 과 "싸가지" 를 비교대상으로 삼고 논의를 진행중이었지않느냐고.
그렇다면 내가 "구김살 없음" 이라고 하지 않고 "구김살" 이라고 해도 
충분히 문맥상  "구김살(없음)" 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여친은 이렇게 말한다.
그건 오빠생각이지 않느냐고. 구김살 없음이 아니라 구김살이라고 하는 바람에 자신이 헷갈려버리지 않았냐고.
오빠는 왜 항상 앞에 말은 다 자르고 결론만 얘기하느냐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맨날 오빠말을 들으면 다 못알아듣고 하지 않느냐고.

일단은 나는 발버둥을 친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문맥상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고.
이제껏 "구김살없음"과 "싸가지"를 비교대상으로 삼고 말하고 있었는데 내가 바보냐. 그걸 갑자기 바꿔 말하게.
당연히 괄호로 생략해놓은거지. 라고.

나와 여친의 활극은 여전히 f(x)=2x+3 과, 이를 x축으로 3만큼 평행이동한 g(x)였다.

그러다가 결국 내가 "그래 그럼 앞으로는 내가 문맥같은것 다 안따지고 항상 정확하게 말할게 됐지!!" 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건 화해의 제스쳐가 아니다.
늘 그렇듯.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

나의 반격의 차례다.

< 내가 지적한 여친의 언어사용상의 잘못 >

B문장에서 보면 알수있듯이. 내 여친은 나에게 "문장구조" 상의 잘못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A문장의 "문장구조" 상의 잘못이 어디있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A문장의 문장구조는 다음과 같다.
              "H" 를 얻는 대신에, 포기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

이 문장의 문장구조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H 자리에 "구김살" 이 들어오든 "구김살없음" 이 들어오든 옳은 문장구조 인 것이다.

나의 반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니가 문장구조라고 하지않고 단어(언어사용)가 잘못 선택됐다라고 말했어야 알아듣지 라고.
문장구조의 잘못은 없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여친이 방어한다.
A문장에서 포기하는 대가가 "싸가지" 아니냐고. 그러니까 앞에는 구김살이 아닌 "구김살없음"이 와야 한다고.
결국 문장구조의 잘못이 맞다고.

하지만 난 재반론에 나선다.
일단 그건 문장구조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A문장에서 포기하는 대가를 "싸가지"라고 놓은 것은 "문맥상" 그런 것 아니냐고.
문맥상 싸가지를 읽었다면, 왜!! 문맥상 "구김살" 을 "구김살(없음)"으로 보지는 못했냐고.

결국 논의의 끝은 이전까지의 논의에 대한 기억을 쉬프트딜리트 한 후에 터덕터덕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참. 독자분들께서 짜잘한 오류를 범하시라고 하는 말인데.
나는 법학과와 국어국문학과.
여친은 법학과와 철학과.

둘다 논리로 벌어먹고 살기엔 적합한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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